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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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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카피: 중국정치 권위자 조영남 교수가 말하는 중국 개혁 개방의 성공 스토리

부제: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 1988-1992년

조영남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6년 9월 25일

ISBN: 978-89-374-3340-5

패키지: 하드커버 · 변형판 145x215 · 440쪽

가격: 23,000원


책소개

중국정치 권위자 조영남 교수가 말하는 중국 개혁 개방의 성공 스토리

 

이제 중국은 세계무대에서 경제와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은 덩샤오핑 시대가 이룬 토대 위에 세워졌다. 예를 들어 1인당 GDP가 2만 4375달러에 달하고 텐센트, 화웨이, ZTE, DJI, BYD 등 세계적인 중국 기업들이 모여 있어 곧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선전시가 바로 덩샤오핑이 1980년부터 공들인 경제특구였다.

 

중국정치 권위자 조영남 교수는 『용과 춤을 추자』(2012)에서 중국에 대한 한국의 잘못된 인식들을 수정해 주었다. 『중국의 꿈』(2013)에서는 시진핑이 주장한 ‘중국의 꿈(中國夢)’의 실체와 그 배경이 되는 ‘안정된 엘리트 정치’와 새롭게 등장한 ‘탈혁명 인문사회형’ 5세대 지도자들의 성향을 분석하였다. 이처럼 명석한 분석을 통해 중국을 이해하는 데 핵심 키워드를 짚어 주었던 저자가 이번에는 평생의 연구 성과를 담은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시리즈를 출간했다.


목차

3권 톈안먼 사건

 

중국은 어떻게 개혁 개방에 성공했을까?

1 “1988년, 잊을 수 없는 한 해”

 

1부 톈안먼 민주화 운동

2 후야오방 추모와 민주화 운동의 시작(1989년 4월)

3 단식 농성과 계엄령 선포(1989년 5월)

4 톈안먼 광장의 진압과 정리(1989년 6월)

 

2부 남순강화

5 개혁 개방의 위기(1990~1991년)

6 ‘남순강화’와 덩샤오핑 노선의 승리: 공산당 14차 당대회(1992년)

 

주(註)

참고 문헌


편집자 리뷰

중국 비상의 토대는 바로 덩샤오핑의 리더십!

 

21세기에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추진해 온 개혁 개방이 성공한 결과다. 그렇다면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는 실패한 개혁 개방을 중국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첫째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정치 리더십의 형성, 둘째 효과적인 정치제도의 수립과 유능한 당정간부의 충원, 셋째 적절하고 실현 가능한 개혁 전략과 정책의 선택이 바로 성공 요인들이다.

 

이 책은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부터 1992년 공산당 14차 당대회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덩샤오핑이 어떻게 난관들을 무릅쓰고 개혁 개방에 성공했으며 그 리더십은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여 주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1권 『개혁과 개방』은 4인방이 체포된 후부터 1982년 공산당 12차 당대회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이 시기에 중국은 통치 엘리트들의 합의와 전 국민의 지지 속에서 개혁 개방을 시작했다. 또한 개혁 개방을 지도할 새로운 리더십인 덩샤오핑 체제가 확립되었다. 2권 『파벌과 투쟁』은 1987년 공산당 13차 당대회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이 시기에는 정치 엘리트들이 ‘개혁파’와 ‘보수파’로 나뉘어 파벌 정쟁이 벌어졌다. 또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체제 지식인의 등장으로 인해 공산당은 국내외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런 과정에서 개혁파의 선봉장이었던 후야오방이 보수파의 맹공을 받아 실각하면서 개혁 개방은 위기를 맞았다. 3권 『톈안먼 사건』은 1989년에 발생한 톈안먼 민주화 운동과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대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이로써 덩샤오핑이 정치적 반대를 극복하고 어떻게 중국 비상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는지 생생한 증언들을 읽을 수 있다.

 

덩샤오핑 시대의 개혁 개방은 단순히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중국’을 있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고, ‘미래의 중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 한마디로 덩샤오핑 시대가 없었다면, 현재의 중국도 없고 미래의 중국도 없다. 그래서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고 미래의 중국을 전망하려면, 덩샤오핑 시대의 개혁 개방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조영남 교수의 저서들은 중국 출판사에 판권이 수출되어도 검열에 걸려 출간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중국어, 영어, 일본어 텍스트와 최신 자료를 모두 연구하는 한편 중국 현장에서도 직접 인터뷰를 해 온 저자의 연구서에는 중국공산당의 검열로 노출되기 어려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명석한 분석에 있지만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풍부하다.

 

 

『톈안먼 사건』 ‘제한된 범위’의 민주화 운동

 

1989년 국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가 지속적인 민주화 과정을 밟았고, 폴란드와 헝가리 같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일당 독재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1978년 민주벽 운동 이후 ‘부르주아 자유화’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들은 중국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덩은 결국 톈안문 사건을 ‘동란’으로 규정한 것이다. “운동 세력과 공산당 간의 대립은 선량한 시민 대 집권당 간의 갈등이 아니라 반혁명 세력 대 혁명 세력 간의 계급투쟁“이 된 것이다.

 

‘동란’이라는 규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것이 모든 수단과 방법의 채택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관점은 계엄군을 동원한 학생운동의 유혈 진압이라는 과잉 대응으로 이어졌다. 이런 점에서 덩샤오핑 등 당시의 지도자들은 비록 개혁 개방을 시작했지만 사고방식은 여전히 문혁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이들의 생각이 ‘과거의 덫’에 갇혀 있다고 해서 민주화 운동의 무력 진압이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개혁기에 공산당이 범한 최대의 정치적 오류이자 덩샤오핑이 범한 최대의 잘못된 결정이다.

―『톈안먼 사건: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에서

 

한국의 학생운동에 깊게 관여했었던 저자 조영남 교수는 톈안문 사건을 ‘제한된 범위의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한다. 우리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생은 운동을 촉발하고 추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전체 상황을 파악하여 활동 계획을 수립하고, 집권 세력과 민주 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협상을 벌이는 등의 역할은 정치 조직과 사회단체의 몫”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바로 이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이 “개혁 개방의 공산당 노선과, 공산당 일당제의 현행 정치체제를 부정하거나 비판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진압 후에 학생운동은 급속히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개혁 개방이 성공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1989년의 민주화 운동이 실패한 근본 원인, 반대로 공산당이 운동의 진압에 성공한 근본 원인은, 개혁 개방의 성공이었다. 덩샤오핑은 이 점을 간파했기 때문에, 운동 중에, 또한 운동의 진압 후에, 개혁 개방의 견지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공산당이 살고 중국이 사는 길은, 빠른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길뿐이고, 이를 위해서는 개혁 개방을 더욱 빠르고 깊고 넓게 추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덩이 탁월한 정치가인지, 왜 그의 방침이 공산당 14차 당대회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톈안먼 사건: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에서

 

그래서 톈안먼 사건과 깊은 관련을 맺고 후에 노벨평화상을 탄 류샤오보는 “1989년의 항의운동, 그것은 결코 위대한 민주운동이 아니라 노예들의 반항운동”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1989년의 운동은 분명히 민주화 운동이다.

 

부패 등 현실 문제를 비판하고,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자유와 민주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다만 현행 공산당 일당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그것을 대신하여 선거 민주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의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를 ‘초보적인 수준’ 혹은 ‘제한된 범위’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톈안먼 사건: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에서

 

그렇게 1989년 학생운동은 ‘실패한’ 운동이 되었다. 부패 척결, 민주적인 정치개혁, 언론과 결사의 자유와 같은 추상적인 목표, 학생운동의 재평가와 학생조직의 합법화라는 과정상의 목표, 어느 것 하나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과 조직 차원 모두에서, 공산당 내부와 공산당 외부 모두에서, 민주화 운동 진영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정국의 보수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는 ‘보수의 시대’가 되었다.”

반면 1991년까지도 덩샤오핑의 개혁은 천윈의 보수주의라는 장벽을 만나야 했다. 그리고 천윈과 리셴녠의 추천으로 총서기가 된 장쩌민도 천윈의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추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덩샤오핑은 1992년 1~2월에 노구를 이끌고 ‘남순강화(南巡講話)’라는 칼을 빼 들고 장쩌민에게 개혁을 압박하기에 이른다. 3권은 이처럼 개혁을 향한 덩샤오핑의 의지가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며 덩샤오핑 리더십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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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200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1989년)하고 정치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1999년)를 받았다. 중국 베이징대학(北京大學) 현대중국연구센터 객원연구원(1997∼1998년), 난카이대학(南開大學) 정치학과 방문학자(2001∼2002년),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방문학자(2006∼2007년)를 역임했다. 연구 성과로는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2016) 3부작(『개혁과 개방』, 『파벌과 투쟁』, 『톈안먼 사건』), 『중국의 꿈』(2013), 『중국의 법치와 민주주의』(2012), 『용과 춤을 추자』(2012), 『중국의 법원 개혁』(2012), 『Local People’s Congress in China』(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21세기 중국이 가는 길』(2009),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 정치』(2006), 『중국 정치개혁과 전국인대』(2000) 등 모두 열다섯 권의 저서와 많은 학술 논문이 있다. 현재는 중국의 통치체제, 중국 현대 정치사, 중국의 이데올로기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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