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른 이름들

조용미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6년 7월 29일 | ISBN 978-89-374-0844-1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40x210 · 168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침묵의 기원에 다가서서

기원의 침묵에 맞닥뜨리는

광활하고 외로운 시의 이름들 

편집자 리뷰

생의 보편성과 시의 고유성 사이에서 무한한 여정을 떠난 시인이 있다. 시인의 여행은 끝을 모르고, 우리는 시인이 보내는 엽서를 받는다. 엽서는 마냥 담백하거나 그저 아름답지 않으며 되레 긴장감이 스며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세계라 부르며, 다른 말로 시집이라 한다. 조용미 시인의 새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이 우리 앞에 당도했다. 조심스레 봉투를 뜯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름다운 침묵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


■ 침묵의 기원

소리는 왜 발자국이 없는가 물처럼 흐르기만 하는가
당신의 목소리가 음각된 곳은 어디일까
-「소리의 음각」에서

시인은 마크 로스코(Marc Rothko) 앞에 서 있다. 시인의 액자 속 그림에서 “수십 가지 뉘앙스의 미묘한 색”을 느낀다. 표면적으로는 얼음 같은 붉은색에 불과하지만, 붉음은 침묵으로 제 안의 무수한 색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강렬한 색으로 빛을 발하는 현실 너머의 심연에 집중한다. 예컨대 시인에게 푸른색은 인디고, 프러시안블루, 코발트블루 등이 되어 기어이 “우리가 아는 모든 빛과 색”으로 분한다. 그것은 안개로 인해 호수처럼 보이는 평원처럼 기이한 풍경이고, 기이한 풍경은 역사를 바꾼다. 시인은 풍경에 점령당했고, 그러한 시인의 언어는 우리를 신비롭게 한다. 현실의 투박함이 감추고 있는 기이한 심연에는 거대한 침묵이 숨죽여 있으며 우리는 그 침묵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인의 시선은 침묵에 동참하는 자아에 닿는다. 이어지는 질문. “나는 어디까지 나일 수 있을까”


■ 기원의 침묵

이제 이 서러움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되었소 한때 우리는 서러움을 함께 나누었소 만나지 않고서도 나누었소 당신의 소식이 더 이상 오지 않는 봄이 온다 해도 내게는 오래 간직한 낡은 마음이 있소 그것으로 족하오 낡은 마음은 봄에 다시 새로운 마음이 되오
-「구름의 서쪽」에서

시인은 침묵 속에서 “나의 다른 이름들”을 찾는다. 나는 하나의 내가 될 수 없으며, 완벽한 타인인 줄 알았던 ‘그’가 되레 나일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나로 수렴하는 존재의 기원은 미끄러지고 나눠지는 모호함 속에서 침묵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능성은 타인과 나의 구분을 무색하게 하고 앞서 침묵을 통해 무화시킨 보편성을 다시금 소환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아이러니가 침묵 속에 백색소음을 내는 것이다. 내가 아니었던 무엇이든 ‘나’일 수 있으며 나인 줄 알았던 그 무엇이 ‘나’가 아닐 수 있다. “용암 같은 침묵이 장전되어 있는/ 이 세계가 바로 나의 것”이되, 나의 발아래 있는 풍경은 늘 어긋나고 있다. 이것은 현실인가, 이것은 중력인가. 당분간 우리는 그 균열의 흔적에 시선을 빼앗길 것이고, 그것은 차라리 우주다. 그렇게 조용미 시의 독자는 새로운 행성에서 언어라는 장벽에 기꺼이 갇힌다. 조용미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은 장전(裝塡)된 침묵이자, 침묵의 장전(章典)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열 개의 태영이 기억하고 있는 우주란 어떤 곳일까”


■ 추천의 말

조용미의 시는 무질서한 이 세계에서, 우주와 조응하는 보편적 유추의 흔적을 묻힌 비밀처럼 찾아내고 감추어진 상징으로 구축하고자 애를 쓰는, 마치 신 앞에서 피조물이 올리는 간절한 기도와도 같은, 명상과 주시의 파장을 구현하려 하는 것과도 같다. (……) 그는 차라리 침묵하는 지대의 무늬들을 귀로 들을 수 있다고, 그 순간의 솟구침을 시선으로 그려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조재룡(문학평론가)


■ 시 속에서

명왕성에서도 몇 광년을 더 가야 하는 우주의 멀고 먼 공간, 아무도 가 보지 못한 태양계의 가장자리,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난 거기서부터 고독을 습득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에서

다만 너를 너무 괴롭히지 않기 위해 그곳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다시 오지 않기 위해

물속의 빛들을 너무 편애하지 않기 위해, 물 밖으로 다시 나오지 않기 위해

다만, 이 생을 조금만 더 사랑하기 위해
-「물의 점령」에서

늘 걷던 길이 햇빛 때문에 달라 보이는 시간, 봄볕에 발을 헛디딥니다 햇빛 때문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달라지다니요 꽃과 나무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봄볕에 하릴없이 연편녹두만 더합니다 부디, 마음 때문에 몸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봄의 묵서」에서

목차

1부

기이한 풍경들 13
당신의 거처 14
나의 다른 이름들 16
우리가 아는 모든 빛과 색 18
나뭇잎의 맛 20
침묵지대 22
압생트 24
시디부사이드 25
죽은 나무 -밭치리 26
가수면의 여름 28
봄의 묵서 30
두 개의 심장 32
풍경의 귀환 34
묵와고가의 모과 36
2부
표면 39
내가 사람이 아니었을 때 40
나의 몸속에는 41
적목 42
거울 44
적벽, 낙화놀이 46
천리향을 엿보다 48
오동 50
검은머리물떼새 52
그림자 광륜 54
흰 독말풀 56
소리의 음각 58
매듭 60
저수지는 왜 다른 물빛이 되었나 62
습득자 64
3부
나의 사랑하는 기이한 세계 69
저녁의 창문들 -베네치아 70
물과 사막의 도시에서 72
그 악기의 이름은 74
나무들은 침묵보다 강하다 76
물의 점령 78
이방인 80
물에 갇힌 사람 82
산 미켈레 84
다리 위의 고양이 86
붉은 사각형 88
베네치아 유감 90
주천 92
틈 93
물고기 94
4부
난만 97
당신은 학을 닮아 간다 98
열 개의 태양 100
빗소리 위의 산책 102
헛된 약속들과의 밀약 104
침묵 장전 106
부러진 뼈 108
괴산 왕소나무 문병기 110
봄, 양화소록 112
풍경의 온도 -굴업도 114
젖은 무늬들 116
상리 118
겨울 하루, 매화를 생각함 120
구름의 서쪽 122
작품 해설
기원의 침묵, 침묵의 기원│조재룡 125
작가 소개

조용미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과 산문집 『섬에서 보낸 백 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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