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문학상

시대의 거부로 이어진 자유와 치열한 양심의 시인 김수영을 기리기 위하여 1981년 제정된 김수영 문학상은,제1회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제2회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제3회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비롯하여, 최승호 <고슴도치의 마을>,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그리고 1990년대의 유하 <세운 상가 키드의 사랑>,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들에게 활발한 시작 활동의 장을 열어주었다.2006년부터 김수영 문학상은 기성 시인은 물론 미등단의 예비 시인들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어놓기로 하였다. 넘치는 패기와 신선한 개성으로 한국 시단의 미래를 이끌어갈 많은 시인들의 관심과 응모를 바란다.

당선작: 「마구마구 피뢰침」 외 67편 , 권박

 

권박시집_표지

 

“나의 모호성은 시작(詩作)을 위한 나의 정신 구조의 상부 중에서도 가장 첨단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유일한 도구를 상실”하게 된다. 김수영 문학상 심사 과정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수상작으로 결정된 「마구마구 피뢰침」 외 67편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건 김수영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의 첫 단락이었다. 김수영은 ‘정신 구조의 상부 중에서도 가장 첨단의 부분’에서 환한 이성의 빛을 본 것이 아니라, 어둠과 혼돈과 미지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탐침(探針)을 발견했다. 이 시의 탐침은 ‘아는 길’이 아니라 ‘모르는 길’로 우리를 밀고 간다. 그의 시들을 나는 어디에서도 읽은 적이 없었다.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모종의 기시감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누굴까? 그의 시는 의식의 첨단에서 ‘모르는 길’을 마구마구 찌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2019년 한국에서 메리 셸리와 이상이 시의 몸으로 만났다. 그는 도서관 시인이면서 내장(內臟)과 무의식의 시인이다. 페미니즘과 초현실주의가 만나 폭죽을 터뜨리고, 정치적인 것과 시적인 것이 새로운 포옹법을 실험한다. 그의 시에서 이 모든 것들이 서로를 교차할 때, 예상치 못한 것, 예외적이고 괴물 같은 것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 그를 ‘새로운 시인’이라고 불렀다.

―김행숙(시인)

 


「마구마구 피뢰침」 외 67편이 준 인상은 강력했다. ‘지금 우리의 공동체가 맞서고 있는 문제들에 이 시대의 시는 어떤 방식으로 대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첨예하게, 시적이면서도 정치적으로 응답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1부에 배치된 시들은 전략적이지만, 그 전략이 평면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시적으로 ‘발언’될 수 있는 자리를 명백하게 가시화한다. 사회학적 텍스트들로 이루어진 주석과 시 본문은 엄밀하게 밀착되어 있으면서, 상상력의 힘으로 그 거리를 벌리고 있다. 이 벌림의 긴장과 힘에 심사자들 모두가 손을 들어 주었다. 시집의 뒤에 배치된 시들에서도 그 긴장의 동력이 팽팽하게 이어진다는 점이 다른 원고들과 차별화되는 강점이기도 했다. 김수영의 표현처럼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뜻밖의 일을 위해서”, “다른 시간을 위해서” 쓰임과 동시에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꽃잎 2」) 발명되는 것이 시이기도 할 것이다. 그 발명을 가장 자신답게 해내고 있는 「마구마구 피뢰침」 외 67편이야말로 김수영 문학상의 이름에 걸맞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 시적 정치의 세계가 앞으로 더 확장되어 나가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하재연(시인)

 


「마구마구 피뢰침」 외 67편은 작품의 수준이 고르게 안정적이어서 시인 자신이 확보하고 있는 작품의 스펙트럼 자체가 넓고 그 전체를 통괄할 만한 능력이 다분해 보였다. 또한 시의적절한 주제를 예리하게 다루면서도 개성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현실의 구멍들을 묘파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고, 이러한 이유로 한 권의 시집으로서의 기획력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작품집이라는 판단하게 됐다.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각주의 활용이었다. 작품이 어떠한 현실 위에 놓여 있는지, 어떤 사실들의 영향을 받아 쓰인 것인지를 가시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주는 현실적인 문제를 딛고 발휘되는 상상력으로 쓰인 작품에 있어서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장치가 현실과 비현실의 차원을 구분하는 경계 이상의 의미를 발휘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시는 좀 더 강력한 목소리를 갖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수영 문학상의 취지를 다시 되새기며 가장 현실적이고도 진취적인 형식과 주제를 보여 준 「마구마구 피뢰침」 외 67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수상자의 건필을 내내 응원한다.

―김나영(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