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으로 전혀 내용이 짐작되지도 않는. 조예은 매직.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어느쯤. 모루와 이월의 이야기.
나는 이 책을 2024년 8월 날이 아주 더운 쨍쨍한 해와 갑자기 쏟아지던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에 읽었다.
어느 화창한 6월. 눈이 왔다.
아이들은 그 눈이 그저 신기하고 반가웠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맞기 위해 받치고 있던 손에 붉은 반점이 일고 몸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아이들은 갑자기 학교를 향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쓰러진 모루. 발목을 다쳐 일어설 수 없었지만, 그런 모루를 도와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그 때 이월이 그녀의 옷깃을 잡아 일으켜 학교로 내달렸다.
하늘에서 내리던 그것은 눈이 아니다. 녹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녹지 않는 눈은 전세계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녹지 않는 눈을 처리하기 위한 백영시 소각장.
백영시는 그렇게 버려졌고, 돈이 없어 백영시를 벗어날 수 없었던 모루의 엄마는 소각장에서 일하다 급성폐렴으로 죽었다. 죽음이 흔해진 세상에 버려진 백영시. 찾아오는 조문객도 없었다.
그렇게 이모와 단둘이 남게된 모루.
모루는 엄마의 뒤를 이어 소각장에서 일한다. 이모가 더이상 일할 수 없어졌기에.
아버지가 일하는 연구소에 잠깐 들렀던 날. 가장 소중한 강아지 하루를 잃고, 이월은 그전의 이월이 아니다. 녹지 않는 눈으로 모든 것을 잃은 새엄마는 사고로 다리를 잃었고, 폐허로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새엄마를 돌보는 것은 이월의 몫이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늘 바빴으니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배경을 가진 모루와 이월은 모루의 이모를 매개로 다시 만난다. 이모를 상징하는 드라이브. 이월의 새엄마가 모았던 스노볼.
제목은 모루와 이월의 매개체를 말하고 있었다.
디스토피아. 녹지 않는 눈은 그런 세상을 말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아이에게는 가끔은 그 눈이 아름다워보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모든 것을 가려버려서 였을까.
작가는 극악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유대가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모가 그러했고, 모루가 그랬고, 이월이 그러했다.
그렇기에 녹지않는 ‘오염물질’이 아니라 눈이라 칭했는지도.
모든 것이 온전치 않은 세상.
작가님은 이 책을 코로나 시국에 썼다고 한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한참이던 시절 속에서도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었다.
녹지 않는 눈 속에서도 모루와 이월은 서로를 기억했고, 만났고, 함께 한다.
인간의 유대란 그런 것일까.
어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해쳐나갈 것이라 믿지만, 책 속의 눈과 같은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럼 모루도, 이래도 지금보다 더 행복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디스토피아는 늘 지금의 현실을 반영한다.
그래서 두려운 것인지도.
“장례식장의 대관료,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관과 유골함 가격, 장지, 그리고 높낮이와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납골당 사용료와 관리비, 예약금까지. 이렇게 죽음이 흔해진 세상이라 애도는 더욱 비싸졌다.” p.42